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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유도 흔들지 못했던 몰리나의 왼발

by 스포츠리서치 2026. 3. 6.

2009년 7월, 한 콜롬비아 선수가 K리그에 입단했고 데뷔전에서 바로 골을 넣었습니다. 브라질 명문 산투스에서 등번호 10번을 달았던 선수가 K리그로 온 겁니다. 당시 저는 경기장에서 전광판에 몰리나 이름이 뜨자마자 관중들이 환호하는 걸 보고 이 선수가 뭔가 다르다는 걸 직감했습니다. 마우리시오 몰리나, 그는 단숨에 K리그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자리 잡았고 2011년에는 더블 해트트릭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마우리시오 몰리나
당시 성남일화천마 소속 마우리시오 몰리나

브라질에서 성남으로, 에이스의 등장

몰리나는 1980년생으로 콜롬비아 엔비가도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멕시코,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세르비아 등 여러 리그를 거쳤는데 2008년에는 브라질 명문 산투스 FC에 입단해 등번호 10번을 달았습니다. 여기서 등번호 10번이란 팀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공격을 주도하는 선수에게 주는 번호로, 펠레가 달았던 번호이기도 합니다.

그런 선수가 2009년 7월 K리그 성남 일화 천마로 약 16억 원의 이적료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K리그에서 16억은 상당한 금액이었고, 구단이 얼마나 기대를 걸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저는 그 시즌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를 보러 갔었는데, 몰리나가 K리그 데뷔전에서 바로 골을 넣는 걸 봤습니다.

실제로 몰리나는 2009 시즌 하반기에만 17경기 10골 3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시즌 내내 홈 무패를 이어가던 포항과의 플레이오프 준결승전에서는 프리킥 골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수비수가 앞을 막아도 몰리나는 왼발로 정확히 구석을 찔렀고, 골키퍼가 손도 못 대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납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클럽 월드컵

2010년, 몰리나는 성남 일화의 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 클럽 대항전 중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아시아 각국 리그 상위 팀들이 출전합니다. 성남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며 2010 FIFA 클럽 월드컵 출전권을 얻었고, 몰리나는 클럽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대회 최다 득점자에 올랐습니다.

FIFA 클럽 월드컵은 각 대륙별 클럽 챔피언들이 모여 세계 최강 클럽을 가리는 대회입니다. 여기서 최다득점자가 됐다는 건 세계적 수준의 수비수들을 상대로도 골을 넣었다는 뜻입니다. 당시 저는 TV로 경기를 봤는데, 몰리나가 유럽 명문 팀 수비수들을 상대로도 주눅 들지 않고 드리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몰리나의 플레이 스타일은 과감함 그 자체였습니다. 수비수 2명, 3명이 앞을 막아도 직접 돌파를 시도했고, 왼발 킥 정확도가 높아서 프리킥 상황에서는 항상 위협적이었습니다. 알고도 못 막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왼발이 강했고, 팬들은 볼 때마다 뭔가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을 느꼈습니다.

서울FC로 이적한 마우리시오 몰리나
서울FC로 이적한 마우리시오 몰리나

FC 서울 이적과 더블 해트트릭

2011년 1월, 성남은 자금 문제로 몰리나를 FC 서울로 보냈습니다. 에이스를 보내야 하는 구단 입장도, 그걸 지켜봐야 하는 팬 입장도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왜 저 선수를 못 잡았을까 싶었고, 다음 시즌 성남이 예전만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몰리나 이탈 이후 성남의 전력은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FC 서울로 간 몰리나는 데얀 다먀노비치와 함께 '데몰리션 듀오'를 이루며 전성기를 보냈습니다. 2011년 8월 27일 강원과의 경기에서는 골 3개와 도움 3개를 기록하며 K리그 최초로 더블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더블 해트트릭이란 한 경기에서 골 3개와 도움 3개를 모두 기록하는 것으로, K리그 29년 역사상 처음이자 세계 축구계에서도 찾기 힘든 대기록입니다.

2012년 7월에는 부산 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뒷발로 성공시킨 골이 스페인 언론 '아스'와 '마르카'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K리그 선수가 유럽 유명 언론에 소개되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고, 그만큼 몰리나의 기량이 세계적 수준이었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 시즌과 은퇴, 그리고 남은 것

2015 시즌은 몰리나의 FC 서울 마지막 시즌이었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16강 진출을 이끌었고, FA컵 결승전에서는 직접 코너킥 슛을 골로 성공시켜 17년 만의 FA컵 우승에 기여했습니다. 저는 그 골을 보면서 이 선수가 진짜 큰 무대에서 빛나는 선수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2015년 12월 31일, 몰리나는 고향 팀인 콜롬비아 인데펜디엔테 메데인으로 돌아갔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K리그에서 활약한 6년이 그의 선수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시기였습니다.

몰리나가 남긴 건 단순한 기록만이 아닙니다. 직관을 갔을 때 상대팀 팬들이 야유를 퍼붓는 걸 봤는데, 몰리나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골을 넣고 우리 팬들이 응원가를 부르면 경기장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 선수가 경기장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걸 몰리나를 보면서 배웠습니다.

에이스 한 명의 이탈이 팀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성남이 몰리나를 보낸 후 전력이 약해진 걸 보면서 구단 운영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습니다.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선수를 지킬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몰리나는 그저 잘하는 외국인 선수가 아니라, K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였습니다.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C%9A%B0%EB%A6%AC%EC%8B%9C%EC%98%A4_%EB%AA%B0%EB%A6%AC%EB%8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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