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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마실 나온 거냐고 했던 날 - 성남FC에서 마음이 떠난 이유

by 스포츠리서치 2026. 2. 26.

K리그에서 7회 우승, 두 번의 3연패를 달성한 팀이 어떻게 2부 리그까지 내려갔을까요? 성남 일화천마는 1989년 창단 이후 한국 프로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던 명문 구단이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성남 일화천마 유소년팀에서 뛰었고, 그 시절 일화의 위상을 직접 체감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구단주 사망 이후 해체 위기를 겪으며 시민구단 성남FC로 전환됐고, 결국 K리그2까지 강등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변경 시기
성남 일화 천마 엠블럼 변경 시기

K리그 최강 성남 일화천마, 두 번의 3연패와 7회 우승

성남 일화천마의 전신인 일화 천마 축구단은 통일교 교주 문선명이 창단한 프로축구단입니다. 1988년 9월 창단 인가를 받아 1989년 3월 정식 출범했으며, K리그 역사상 최초의 서울 연고팀이라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초기 3년간은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1992년 신태용을 영입하면서 팀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일화는 1라운드에서 김정혁을 지명했으나, 대우 로얄즈가 신태용과 이태홍을 1대2 맞트레이드로 제안했고 구단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트레이드는 K리그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거래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신태용은 이후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군림하며 일화 왕조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일화는 리그 최초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 기간 이상윤, 고정운, 신태용이 차례로 리그 MVP를 수상했고, 박종환 감독은 3년 연속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리체프라는 소련 리그 올해의 골키퍼 출신 외국인 선수가 뛰어난 활약을 펼쳤는데, 그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골키퍼 포지션 외국인 선수 기용을 금지시킬 정도였습니다. 1995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막대한 오일머니를 앞세운 이란과 사우디 팀들을 제압하고 우승을 차지하며 아시아 최강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저는 유소년팀에서 뛸 때 1군 선수들의 훈련을 가끔 지켜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시 선수들의 훈련 강도와 집중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특히 전성기 때는 전 선수단에게 12박 13일 유럽 4개국 여행을 우승 보너스로 지급할 정도로 구단의 투자가 엄청났고, 그만큼 선수들도 결과로 보답했습니다.

1996년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천안으로 이전한 후에도 일화의 저력은 이어졌습니다. 비록 리그 성적은 부진했지만, 1996년 아시안 슈퍼컵과 아프로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모두 우승했습니다. 천안 시절 마지막 해인 1999년에는 정규리그 최하위를 기록했지만 FA컵에서는 전북 현대를 3-0으로 꺾고 창단 첫 FA컵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2000년 성남으로 연고지를 옮긴 후 일화는 다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또 다시 3연패를 달성했는데, 특히 2003년에는 김도훈이 K리그 역대 단일 시즌 최다 득점인 28골을 기록하며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당시 김도훈, 샤샤, 이성남, 이기형, 윤정환 등으로 구성된 스쿼드는 K리그 역대 최강 스쿼드 중 하나로 꼽힙니다. 70억원이라는 막대한 이적료를 투자하며 구성한 이 팀을 언론에서는 '레알 성남'이라 불렀습니다.

2010년에는 신태용 감독 지휘 아래 두 번째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ACL(AFC Champions League)은 아시아 클럽 축구 최고 권위의 대회로, 유럽의 UEFA 챔피언스리그에 해당하는 아시아 대륙 챔피언 결정전입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다는 건 아시아 최강 구단임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남 일화천마는 2010년 ACL 우승 후 FIFA 클럽 월드컵에 출전해 당시 트레블을 달성한 인테르나치오날레와 맞붙기도 했습니다.

유소년팀 출신이 본 일화의 몰락과 시민구단 전환

저는 성남 일화천마 유소년팀에서 뛰면서 프로팀의 시스템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일화 유소년은 K리그 최강 구단의 유소년답게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과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동네 클럽과는 차원이 다른 환경이었고, 그 유니폼을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하고 축구를 그만둔 후, 일화는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9월 구단 창단자이자 축구에 큰 애정을 가졌던 문선명이 사망하면서 통일교 재단이 구단 운영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선명의 부인 한학자와 4남 문국진은 축구에 관심이 없었고, 통일그룹은 수익성 낮은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2012년 10월 WK리그 충남 일화 천마가 해체됐고, 피스컵마저 폐지되면서 성남 일화천마도 해체 위기에 몰렸습니다. 2013년 8월에는 안산시로 연고지를 이전한다는 보도까지 나왔습니다. 성남 팬들과 지역 스포츠 관계자들이 성남 연고 이전 반대 및 성남시민축구단 창단 촉구 궐기대회를 열면서 여론이 형성됐고, 결국 2013년 10월 이재명 성남시장이 구단 인수를 발표했습니다.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성남FC는 명문 일화 천마와는 다른 팀이었습니다. 기업 구단 시절처럼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선수를 영입할 수 없었고, 팀 운영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성남FC가 된 이후 직관을 몇 번 갔는데,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예전 일화 선수들이 더 잘했어. 지금은 경기를 뛰러 나온 건지 마실을 나온 건지 모르겠네. 이기려는 의지도 안 보이고 전술도 답답해."

저도 그 말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예전 일화는 후반 막판까지 악착같이 뛰는 투지가 있었는데, 시민구단이 된 후 그런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유소년팀에서 뛰었던 제가 봐도 확연히 달랐으니까요. 그 이후로 저는 성남FC에 대한 기대를 점점 접게 됐고, 지금은 서울에 살면서 서울FC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성남FC가 K리그2로 강등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많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유소년으로 뛰었던 팀의 이름을 이어받은 구단이 2부 리그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물론 저는 더 이상 성남FC를 응원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 팀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시민구단 전환이 모든 팀에게 나쁜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시민구단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남FC의 경우 기업 구단 시절 쌓아올린 명성과 팬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고, 그 간극을 메우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재정 규모가 줄면 선수 영입이 어려워지고, 경쟁력이 떨어지면 성적이 나빠지고, 성적이 나빠지면 팬이 떠나고, 팬이 줄면 수익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K리그 명문 구단의 몰락 과정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축구는 개인 기량도 중요하지만, 결국 팀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조직력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전 일화는 그 조직력이 뛰어났고, 막대한 투자를 바탕으로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해 시너지를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성남FC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보다 팀 전체의 시스템이 중요한데, 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성남 일화천마는 K리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문 구단이었습니다. 7회 우승, 두 번의 3연패, AFC 챔피언스리그 2회 우승이라는 기록은 여전히 K리그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구단주 사망 이후 시민구단으로 전환되면서 팀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K리그2까지 내려갔습니다. 제가 유소년팀에서 뛰었던 그 팀의 영광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도 성남FC가 다시 일어서서 예전 일화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참고: https://namu.wiki/w/%EC%84%B1%EB%82%A8%20FC/%EC%97%AD%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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